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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드박스, 우리도 결국은 새장 속의 새같은 존재가 아닐까?

by 무엇이든 읽음 2021.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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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감지하는 새

소설 'Birdbox'라는 원작을 영화한 작품으로 산드라 블록이 주인공이다. 그림을 그리는 것 외에 주변 아무것도 관심이 없는 화가 맬러리(산드라 블록)는 임신 중이지만, 태중의 아이의 건강상태 등에 아무런 관심이 없다. 여동생인 제시카는 그녀를 여러모로 챙겨주려고 자주 방문을 하고, 외부 세계의 소식들을 전해 준다. 하지만 거기에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 어느 날 러시아에서 대규모 자살 소동이 시작되고, 이는 전 세계로 점점 퍼져나간다. 맬러리는 여기에도 역시 아무런 관심이 없다. 산부인과를 다녀오던 날, 제시카가 운전을 하다가 어떤 것을 목격하게 되고, 갑자기 그녀는 자살해버린다. 당황한 맬러리가 몸을 피한 집 안에는 8명이 몸을 피하게 된다. CCTV로 집 밖을 관찰하던 집주인마저 무언가를 보고 자살을 해 버리고, 그 와중에 만삭인 여자(올림피아)가 다시 집 안으로 몸을 피해 다시 8명이 집안에 몸을 숨긴다. 올림피아가 괜찮을 거라며 집으로 들인 또 다른 한 명, 게리는 알고 보니 사이코였고, 이미 정신이 이상했기 때문에 '그것'을 보더라도 자살하지 않았다. 게리는 맬러리와 올림피아가 2층에서 출산하는 동안, 정신병 증세가 발현되어 사람들을 다 죽인다. 결국 살아남은 사람들은 맬러리와 톰, 그리고 아들, 딸이었고, 이들은 숲 속에 5년을 버틴다. 어느 날 무전 연락이 된 릭이라는 사람의 안내를 받아 몸을 숨길 수 있는 다른 위치를 확인하고 이동을 시작한다. 여정에서 사이코 무리를 만나게 되고 결국 톰은 죽게 된다. 아이들과 함께 셋 모두 눈을 가리고 강을 건너면서 물에 빠지게 되지만, 무사히 강을 건넌다. 숲 속에 도착했을 때, 안대를 벗어보라는 유혹의 목소리가 들리지만, 무시하고 전력 질주해서 목적지인 안전한 공간에 도착한다. 그곳은 처음 멜라니에게 입양을 권했던 산부인과 의사가 머무르고 있는 시각 장애인들이 모여있는 학교였다. 

원서 버드박스, 결말이 다를까

자살 직전 가장 약한 모습을 드러내는 인간들

바이러스가 됐든, 악령이 됐든 어떤 존재를 눈으로 보게 되면 '감염'되어 자살한다. 극 중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재각각의 방식으로 자살한다. 맬러리는 생필품을 구하러 마트에 갔다가 새장에 갇힌 새를 발견하게 된다. 새는 사람들을 자살하게 만드는 존재를 감지하면 난리를 피우며 크게 반응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맬러리는 새를 데리고 온다. 일종의 악령 경보장치로 이 새를 활용하기 시작한다. 악령의 존재 때문에 사람들은 집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되고, 사람들은 그들의 안전을 위해서 새를 새장에 가둔다. 집 밖을 돌아다니면서 사람들을 만나고 이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람들은 더 이상 그러지를 못하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녀야 하는 새는 새장 속에 갇혀서 더 이상 날아다니지 못한다. 악령과 인간은 자신보다 더 약한 존재를 억압하고 가두어버린다. 맬러리가 아이들을 데리고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시각장애인의 학교는 커다란, 유리 천장을 갖고 있는 건물이다. 사람들이 사는 집들의 모양은 기본적으로 육면체 박스 모양을 갖고 있는데, 병원, 학교는 더욱 그런 상자의 모습이다. 맬러리는 학교에 도착해서 박스에 넣어 다니던 새를 풀어준다. 새는 자유를 찾았다. 그러나 맬러리와 아이들이 도착해서 들어가는 학교는 또 다른 모습의 거대한 상자, 버드 박스이다. 악령에서 벗어나 안전한 곳으로 탈출한 것이 또 다른 거대한 버드 박스라는 점은 우리가 사회라는 억압된 구조에서 다른 곳으로 탈출해도 결국은 또 다른 억압된 구조 속으로 들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을 말하는 것 같다. 

버드 박스는 원작 소설과 다르다

원작 소설이 있는 경우, 영화에서는 다르게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 영화는 소설이 묘사하는 장면 등을 영상과 소리로 재현한다. 원작의 배경 도시는 영화의 캘리포니아보다 더 우울한 디트로이트이다. 영화에서는 짧게 자살해 버리는 각 캐릭터들은 소설에서는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것들과 싸우면서 수년을 버텨낸다. 영화에서는 희망을 상징하는 새가 원작 소설에서는 사람들을 대신해서 미쳐버리고, 이런 모습을 보는 사람들은 그것이 접근하고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결정적으로 영화와 원작 소설의 결말은 그 톤이 전혀 다르다. 영화에서는 시각 장애인들이 모여있는 학교였다. 소설에서는 그것을 보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시각을 스스로 포기한 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었다. 원작 소설이 더 암울한 디스토피아적인 내용을 더 잘 그렸고, 나는 이 것이 더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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