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사라진 시간, 이건 윤회인가? 악몽인가?

by 무엇이든 읽음 2021. 7. 2.
반응형

시간이 아니라 내가 사라진 것이었다. 영화 포스터.

조진웅 때문에 골랐다. 정진영 때문에 끝까지 봤다.

넷플릭스에서 내 취향에 맞는 영화라고 '사라진 시간(조진웅 주연)'을 추천해줬다. 이 영화는 좋아하는 정진영 배우가 감독 데뷔를 한 작품이란다. 그렇다면 안 볼 이유가 없어서 주말 늦은 밤에 '사라진 시간'을 봤다. 이 영화의 첫 장면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과 같다. 단 흑백의 화면이 컬러로 바뀌어 있다는 점만 다를 뿐. 이런 장치들이 정진영 감독이 말하고 싶어 하는 것을 영상에 녹여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시골 초등학교 교사로 살아가는 수혁과 이영 부부는 조용히 살아가려고 하지만, 아내의 비밀이 마을에 알려지게 된다. 이들의 집이 불타버리고 등장하는 조진웅 형사. 조사과정에서 잠들었다가 깨어난 후, 조진웅에게는 초등학교 교사의 삶이 덧씌워지게 된다. 자신을 제외한 모든 마을 사람들, 서울에 있던 자신의 가족까지 모두 바뀌어버린 것이다. 조진웅 형사의 아내와 자식들은 모두 다른 사람의 아내, 자식으로 바뀌어 있다. 영화의 후반부에는 교사로 바뀐 조진웅이 원래 형사의 삶으로 돌아가려고 애쓰는 과정들을 그린다. 그러나 결국 원래의 삶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영화는 끝난다. 영화의 처음에 흑백이었던 부분이 똑같은 장면의 자연색으로 나오면서 마무리된다. 

나에게 나, 다른 사람에게 나

영화를 보는 동안, 어떤 장치 때문에 불타버린 집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갔는지, 어떤 복선과 암시가 형사인 조진웅을 교사 조진웅으로 만들어 버렸는지, 조진웅에게 살해당한 정해균은 어떻게 다시 멀쩡하게 살아서 마을을 돌아다니는건지 단서를 찾기 위해서 집중했다. 그러나 그런 궁금증에 대한 답을 영화가 끝나는 동안에 나오지 않았다. 감독으로 데뷔한 배우 정진영은 자기가 하고 싶은 말만 계속 한다. 불친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찜찜한 기분에 감독의 인터뷰를 찾아봤다. 어떤 계기였든 형사에서 초등학교 교사가 된 조진웅이 나타난 그 시점은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생각하는 나'의 충돌점이었다. 내가 생각하는 내 모습이 있는데, 다른 사람들이 그것을 인정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결국 '내가 생각하는 나'가 사회적으로 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내가 '형사 조진웅이오!!!'라고 주장해도 온 마을 사람들, 아파트 주민들이 당신은 '초등학교 선생 조진웅이오~'라고 하면 어쩔 수 없이 그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초등학교 교단에서 처음에는 어색해 하다가, 어느 순간 자연스럽게 책을 펼치고 아이들과 수업을 진행하는 모습이 바로 그런 장면이다. 자신이 인정하든, 그렇지 않든, 받아들이는지 거부하는지의 여부와 무관하게 다른 사람들이 기대하는 모습을 살아가게 되는 것이다.

 

애정하는 두 배우. 한명의 배우와 한명의 감독.

이건 꿈인가? 생시인가? 윤회인가? 악몽인가?

조진웅이 선생님으로서 다시 깨어났을 때, 이 상황을 악몽이라고 생각한 조진웅(형구)은 제자의 아버지인 해균을 살해한다. 살해만 한 것이 아니라 비닐하우스에 방화하여 현장을 완전히 없애버린다. 악몽에서 깨어나려면 그 악몽보다 더 심한 악몽을 꾸면 된다는 생각으로 살해와 방화를 저지른 것이다. 그런데 그다음 날, 조진웅의 만행은 리셋되어 있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아니 정말 아무 일도 없이 해균은 살아서 마을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면서. 극 중에서 조진웅(형구)은 해균을 한 번 살해했다. 그리고는 되돌려진 두 번째 삶, 교사의 삶을 살아간다. 만약, 형구가 해균을 계속해서 살해하면서 더욱더 심한 악몽을 계속 만들어 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래도 계속 원래의 교사의 삶으로 돌아가서 새로 시작할 수 있었을까? 드라마였던가, 만화였던가, 어릴 때 봤던 장면이 갑자기 머리를 스쳤다. 그의 매일매일이 리셋되는 것을 알게 된 한 남자가 있었다. 이것을 악용하여 일탈하고, 점점 나쁜 짓을 반복하면서 하고 싶은 대로 살았다. 하지만 다음 날이면 다시 돌아가기 때문에 그는 악행을 부담 없이 반복했다. 그리고 결국 살해까지 하게 되고 감옥에 갇힌 그 남자는 웃으면서 잠들었다. 어차피 다음 날이면 원래 자기 방 침대에서 깰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음 날 그는 감옥의 차가운 바닥에서 잠에서 깼다. 그의 매일은 이제 감옥에서 눈뜨는 것으로 영원히 리셋된 것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만드는 것이 감독 정진영의 의도였을까? 친절하지는 않았지만, 간만에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영화 '사라진 시간'이었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