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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가니니, 귀가 아니라 눈으로 듣는 바이올린 영화

by 무엇이든 읽음 2021. 7.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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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주를 보는 것만으로도 가치가 있다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에 어린 시절부터 천재적인 재능을 보였고, 아버지의 혹독한 훈련을 받으면서 실력을 키웠다. 당대 유명 바이올리니스트로서 부와 명성을 누리고 있었지만, 관객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연주만 하는 삶에 좌절하며 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런 그 앞에 우르바니가 나타나 모종의 거래를 한다. 거래 내용을 들어보면 우르바니는 악마임을 유추해 볼 수 있다. '이번 생은 내가 당신을 섬길 테니, 다음 생은 당신이 나를 섬기는 것'은 누가 봐도 영혼을 걸고 거래하는 것이었지만, 파가니니는 그 계약을 받아들인다. 18세기 유럽의 클래식 음악계의 아이돌 같은 존재였던 니콜로 파가니니가 남긴 유명한 에피소드와 루머, 전설들을 잘 버무려 영화로 만든 것이 이 '파가니니,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이다. 

 

파가니니

니콜로 파가니니는 1782년 이탈리아에서 태어나 7세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했고, 13세 무렵에는 이미 명연주자의 반열에 올랐다. 너무 어린 시절부터 성공을 하는 바람에 술과 도박에 빠져 살았고, 17세에는 도박빚을 지는 바람에 바이올린까지 차압당한다. 그 후 이탈리아를 누비며 연주여행을 하고 안토니아 비앙키를 만나 아들을 출산한다. 영화의 대부분 이야기는 런던 공연에서 일어난 일들을 다루고 있는데, 자신을 초청한 존 왓슨의 딸인 샬롯과 사랑에 빠졌다. 파가니니는 50대였는데, 샬롯은 미성년자였기 때문에 미성년자 간음죄로 감옥에 투옥된다. 방탕한 생활을 하던 파가니니는 매독에 걸려 결국 프랑스 니스에서 결핵으로 사망한다. 그는 작곡과 연주를 같이 했는데, 자신이 작곡한 곡이 너무 어려워 연주를 할 수 없어서 오랜 시간을 연습하기도 했다고 한다. 파가니니는 한 손으로 4개 현을 짚으면서 3옥타브를 연주할 수 있었다고 하는데, 정상적인 성인의 손으로는 이런 연주자세를 만드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파가니니의 외모를 묘사한 글들을 보면 손가락이 엄청나게 길고, 기이한 각도로 꺾이기도 했다는데, 마판증후군이라는 질병을 앓고 있었다고 추정하기도 한다. 녹음기, 축음기가 없던 시절이라 사람들은 연주자의 연주를 듣기 위해서 콘서트 홀에 모여들었고, 연주를 그 자리에서 악보로 옮겨서 악보를 재현해내기도 했다. 영화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널리 알려진 에피소드, 콘서트 장에서 신들린 연주를 하면 그 자리에서 여인들이 실신하는 장면, 4개의 현 중 G현만 남고 다 끊어지지만, 하나의 현으로도 곡을 연주해 내는 장면 등이었다. 

 

 

편안한 복장으로 대중들에게 다가간다. Rock star 같은 옷차림으로 무대에 오르는 경우가 더 많다

데이비드 가렛

파가니니를 연기한 데이비드 가렛의 연기력을 비난하는 영화 리뷰가 상당히 많다. 그러나 그는 연기자가 아닌 연주자이고, 그런 그에게 감독이나 관객이 기대하는 바는 파가니니 연주의 재연이었기 때문에 그는 그의 몫을 다 했다고 생각한다. 이번 영화에서 그가 연주한 곡은 '파가니니 카프리스 9번- the Hunt', '파가니니 베니스의 사육제(하나 남은 현으로 연주하는 그 곡)', '나 그대만 생각해(샤롯과의 합동 연주)', '파가니니 카프리스 24번', '영국 국가 변주곡', '파가니니 라 캄파넬라 협주곡 2번'이었다. 데이비드 가렛은 4살 때 바이올린을 처음 배웠고, 10살에 함부르크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와 공식 연주회를 가졌다. 11세에 독일 대통령으로부터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선물 받고, 14세에는 파가니니 전곡을 연주하며 세계를 다니며 매번 전석 매진이 되는 콘서트를 연다. 스무 살에 줄리어드 음대에 수석으로 입학해서 이작 펄만에게 사사받는다. 어릴 때부터 독일의 클래식계를 다 쓸어버린 아들이 줄리어드 음대에서  더 음악을 배울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는 아버지와의 갈등으로 학비지원이 끊어지고, 데이비드 가렛은 학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모델일을 병행한다(보그, 바나나 리퍼블릭,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학교를 졸업하고 연주에 사용하던 15억 정도 되던 악기는 계단에서 미끄러지는 사고로 파손이 되고, 지금은 60억 원 정도의 스트라디바리우스를 사용하고 있다. 정통 클래식을 연주하던 그가 크로스오버 연주도 함께 하면서, 작곡까지 해내고 있는 것을 두고 평론가들은 안타까워하는 발언들을 많이 했지만, 그는 대중들에게 크로스오버를 시작으로 전통 클래식까지 모두 전해주겠다는 뜻으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크로스오버 연주를 하면서도 전자 바이올린이 아닌 클래식 악기를 계속해서 사용하는 점은 그의 의지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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